본문 바로가기
역사 (冊)

500년 매일의 현대사를 역사로 읽는다 - 1

by Khori(高麗) 2012. 6. 11.
728x90
반응형

[도서]조선 왕을 말하다

이덕일 저
역사의아침 | 2010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역사인식이 주류와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상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책으로 이덕일 소장만큼 베스트셀러를 갖고 있는 재야사학자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선과 근대, 상고사까지 다양한 범위를 넘나들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호응하는 이유를 생각해볼만 한 일이다. 사견이지만 이 책도 60년전쯤에 나왔으면 불온서적의 딱지가 붙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게된다.

그의 전작을 떠나, 간략하게나만 한권짜리 조선왕조실록을 먼저 읽어보고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사기를 읽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원문을 본적이 없다는 자책(물론 낱권짜리실록도 원문은 아니다), 두번째는 비록 낱권이지만 교과서같은 책을 읽고 또 이 책에서 말하고자하는 바를(조금 예상이 됨으로) 다시 보고자했던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1권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많은 생각에 또다른 생각을 더하게된다. 가장 궁금한것은 조선사를 공부하는 사람중에 실록전체를 완독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무심코하게된다. 그리 많지 않을것 같다고 말하면 너무 오만한것일까도 추측해본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은 역사학자의 기술을 통한 인식하는 것이 정보습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사실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패자의 역사중심기술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만이 정도인지는 생각해볼만한 일이며, 고증이 진실되게 되었는지를 고증하는 것도 생각해볼만한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는 실록에서도 나오지만 사관들이 화를 모면하기 위해 사초를 숨기는 일도 있고, 그런 화가 발생하기도 하고, 고치는 일도, 빼버리는 일도 있고, 승자가 맘데로 기술한 듯한 부분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퍼즐을 찾아내는 과정은 놓친것을 찾아내는것과 숨겨진것을 찾아내는 것인것 같다. 마치 중국이 장개석이 갖고간 문화유산의 빈자리를 지칠줄 모르는 삽질로 극복한것처럼.

이 책에서 왕이란 권력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성리학, 사색당파의 관계, 명/청/왜의 시대적 배경과 외교관계, 왕과 훈구대신, 사림과의 관계를 통해서 왕이 걸어야했던 길을 조명하는 다양한 접근은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맥락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인이 이덕일소장이 너무 당쟁만으로 조선을 설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도 하지만, 나는 조선의 통치이념인 성리학과 그 학문적 이해를 실천하려는 사색당파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또 괜실히 딴지를 건다면 통치철학의 높은 뜻은 왕권이 이양될수록 삭감되는것같다. 사회의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와 계급의 불만과 권력의 욕구가 성리학이란 시스템과 되려 격렬하게 부딪친다고 생각하는것은 어쩌면 태조의 역성혁명때문인가? 그런데 새로운 왕조의 시작중에 역성혁명이 아닌것도 드물다. 그와중에 버려진 민중들의 삶이 가련한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한 역사학자가 한국의 근대가 시민혁명이 없었던것이 사회를 새롭게 세우지 못한 원인이라 지적하듯, 몇일전 책에서 서얼이 인구의 절반이 되었는데 새로운 사회시스템으로 전환되지 못한 조선의 역사에 대한 아쉬움이다. 하긴 이럴 겨를도 없이 무너진듯도 해보인다. 실록에서 아쉬움이라면, 이 책에의 시각은 깊은 한숨과 현재를 바라보게도된다. 성리학과 재조지은같은 사대의 사상속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란 욕망으로, 끊임없이 지우려했던 욕망의 역사를 느끼기 때문이다. 무엇을 남길것인가를 왕들이 더 생각했다면, 현재가 좀더 좋아졌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잘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옳고 그름이 아닌 진실이 더 많이 기록되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1-4부까지의 내용에서 출연하는 각각의 왕들이 그 안에서 서로 다르다. 악역의 태종속에서 신념과 부정을 느끼지만, 세조를 보면서 조금 정치적인 개인의견일지 모르지만 박정희가 생각나는건 어쩌면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라고도 생각된다. 폐서인된 왕들을 보면서 연산군에 대한 의견은 저자가 실록의 기술주체, 사초의 부족, 사관의 신빙성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좀더 고증해 볼일이라고 생각한다. 과장되게 기술된 가능성이 매우 높고, 저자의 퍼즐풀이가 연산군 전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폄하된 부분에 대한 복원이란 부분에 한정하면 근거의 조합을 통해서 상당히 논리적이고 수긍이 간다고 생각한다.  

또 광해군을 읽고 다시 선조로 가는 배치는 교묘하다. 선조에 대한 실록을 근거로 왕이 통치의 권력만 알고, 의무는 져버리고, 그 사회통치기반인 사대부의 보신주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다시 광해군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치욕적인 역사의 현장속에 있는 인조를 통해서 무너진 이상주의 사회의 현실을 조명함으로 다시 또 광해군을 보게하는듯 하다. 그래서 광해군을 보면 노무현대통령이 조금 생각나는듯하다. 4부는 재임기간이 매우긴 왕들을 통해서 당파의 정쟁을 환국이란 타협으로 풀어가는 한계, 탕평을 논하면 스스로 한곳에 발붙어 있길 원해던 영조의 한계를 본다. 교과서에서 탕평책과 51년의 치세에 대한 업적평가와 이 책의 평가가 너무 차이가 나니 무엇이 옳은지 참 걱정이된다. 

책을 읽고 다시한번 현재 우리가 과거 사실을 지우고자 했던 선인의 뜻을 받아, 또 우리들의 생각만으로 취사선택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또 과거의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배움이 없는 공부를 한다면 한낱 유희에 불과한데 그러기엔 우리의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라 생각한다. 이왕이면 교과서라도 보며, 시각차이를 갖고 봤으면 한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