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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Winter is coming - 설국열차 (snowpiercer)

by Khori(高麗)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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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엔 가족들과 꼬기를 먹으러 나가  계획이다. 원래 영화를  번씩 보지 않는데, 최근엔 다시 보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신선한 것은 생각이 변하기보다 새로운 점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영화가 전개되는 것처럼 피지배자에서 권력에 다가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세상은 분열되었다 다시 뭉치고, 뭉쳤다 다시 분열된다. 역사가 그렇게 기록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영화를 보며 커티스가 걸어가는 과정이 눈에 띈다. 과거 에드가를 취하려 했던 기억, 동시에 길리엄의 숭고한 모습을 따라 하지 못했던 마지막 내레이션은   없다. 단지 그는 꼬리칸에서  칸,   전진한다. 머리칸이 배급하는 식량, 그들의 강압적 폭력에 마주 서는 용기, 물이란 생존의 중요한 수단의 차지, 강력한 힘의 격돌, 다시 성냥이 횃불이 되는 반전을 넘어 머리칸의 모습을 보게 된다. 풍족한 음식, 교육, 향락의 문화가 지나면 윌포드가 있는 곳이다. 

 

 윌포드는 커티스에게 자신의 권좌를 약속한다. 길리엄은 윌포드와 서로의 극단에서 협력하며 세상을 운영했다.  말은 세상에 절대적인 옳고 그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말로 이해된다. 다른 사고와 생각의 존재는 인정하며 최소한의 협력을 통해 변화를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일  있다.

 

 머리칸의 말처럼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있어야 안정이라고   있을까? 크리스처럼 현실을 극복하고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가 불안정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하나만으로 단정할  없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지키기 위한 사람들이 있고, 자신의 현재 위치를 감당할 역량이 없지만 지키고 싶은 사람도 있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넘어  좋은 곳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그럴만한 역량과 실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뉜다. 

 

 이런 조합을 보면 윌포드와 길리엄은 실력도 있고, 위치를 잘 유지해 왔다고 해야 할까? 크리스는 실력도 있고, 자신의 위치를 개선해 가는 중인가? 남궁민수와 요나는? 메이슨은 좋은 위치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것일까? (다시 보니 배역이 근본 없고, 생존을 위해 야비하다) 꼬리칸의 죽어나간 사람들은 그럴 역량이 부족하지만  좋은 삶에 대해 꿈꾸는 것이 죄악인가? 무엇 하나로 단정하기 어렵다. 이런 여러 이유로 세상이 복잡해질  있다는 사실 외엔.

 

 모든 조합은  좋은 삶, 평화, 즐거움을 지향한다는 점은 같다. 너무 나이브해서도 안 되고, 사람에게 부적합한 방식도  된다. 무엇보다  안에 인의(人義)와 같은 사람에게 뜻, 가치를 담는 진실이 있어야 한다는 명제가 중요하다. 뜬금없이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이란 게티즈버그의 연설이   연설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엔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Strangely, why Snoepiercer comes up for me now?

 

#설국열차 #어쩌다리바이벌 #영화 #봉준호 #송강호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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